아침에 몸이 무거운 건 어쩔 수가 없다. 특히 이곳 르완다에 와서 나는 잠이 늘었다. 고산지대라 산소가 부족해서인지 아직도 내가 이곳에 적응을 못한 건지 아니면 그냥 게을러진 건지…(정답인가?;) 모르겠지만, 이중에 하나지 싶다.


트레킹 코스


길떠나는 자

 아침은 빵 2개랑 장작불에 데운 커피로 간단히 때우고 우리는 숲 속 트레킹을 하기 위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트레킹 코스는 8개 정도 있었는데 우리는 폭포를 볼 수 있는 4시간 짜리 코스를 선택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이 코스가 다른 지점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럼 차로 데려다 주나?’ 라고 생각한 건 내가 아직 순진해서 일꺼다. 길가로 나와 지나가는 차를 무작정 잡기 시작했다. 처음 10분 동안은 차가 안 지나갔지만 시간이 넉넉하기에 여유로웠다. 하지만 얇게 오던 빗방울이 굵어지면서 마음도 급해졌다. 그래서 나랑 영문이랑 무작정 길가로 뛰어나가서 지나가는 차를 마구 잡아 세웠다. 쌩쌩 지나가던 차들 중에 한 대가 우리 앞에 멈춰 섰고 우리는 안 되는 르완다어로 열심히 우리 좀 데려다 달라고 우겼다.’ 다행이 흔쾌히 허락이 떨어졌다.(나는 나한테 유리한 건 잘 알아듣는다ㅋㅋ)빈자리는 두 자리 뿐이어서 일단 우리 둘만 타고 다른 세 사람은 다른 차를 잡기로 했다.


최악의 도로 ㅠ

사실 그곳까지 얼마나 먼지 우리도 몰랐다. 도착해보니 차로도 40분 정도 되는 먼 거리였다. 길은 또 어찌나 안 좋던지 에이스 침대가 와도 울고 갈 흔들림이었다. 그래도 웃으며 노랑 이방인을 태워준 르완다분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니웅웨 국립공원 '본부'



잘 다듬어진 본부안


게스트 하우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니웅웨 숲의 본부였다. 본부에는 우리가 지난밤에 머무르던 곳과는 다르게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다. 1인당 2만원 정도로 상당히 비쌌지만, 깔끔해서 머무를만한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날 숙박을 창구구라는 국경지대에서 머무르기로 했기 때문에 얼른 욕심을 접어야 했다.

다른 팀은 우리보다 40분이나 후에 도착했다. 이때가 1120. 그러나 안타까운 소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은 시간이 늦어서 4시간짜리 폭포코스를 보러 가는 것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그냥 가자고 우겨서 갈수 있었으나 다음날 일정에 지장이 생길까봐 우리는 그냥 2시간 짜리 코스로 방향을 틀었다.


알록달록 새

걸신들린 점심먹기

게스트 하우스 밖에 있던 정자에서 우리는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점심메뉴는 한가지!, 구운식빵 2-3조각과 커피나 차, 그리고 쨈과 설탕이 나왔다. 가격은 천원! “오 싸다싸다를 외치며 하나라도 더 먹을려고 빨리빨리 먹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가격이 무려 4천원…..ㅠㅠ. 돈이 아까웠지만 우리도 먹을게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자 그럼 돈은 이미 냈고, 그럼 이제 가능한 많이! 먹어 본전을 뽑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온 빵을 다 먹었지만 나는 배가 고팠다. 우는 아이 빵 하나 더 준다 안했는가. 주방으로 접시를 들고 가서 은다숀제 차네!(배고파요 많이)”를 열심히 외치며 접시를 건넸다. 조금 망설이는 듯 싶더니만 역시 나의 간절함이 통했다! 빵을 더 얻어 와서 굶주린 동지?들과 나눠 먹었다. 근데 그래도 배가 부르지 않아서 한 번 더 갔다. 접시를 주면서 눈치를 딱 보아하니 요번에는 주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난 안다 이곳은 때법이 통하는 곳!ㅋㅋ 5분 정도 문밖에서 배고파요 너무를 계속 칭얼대니까 이 사람들도 시끄러웠을 꺼다. 식빵을 조금 더 받았다. 비록 구운 빵은 아니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차밭+_+

배를 두둑이 채우고 우리는 길을 떠났다. 원숭이를 볼 수 있는 코스란다. 원숭이야 뭐 사실 별로 흥미 없었고, 난 중앙아프리카의 그 순수한 자연을 한번 보고 싶었다. 설렘을 안고 출발한 우리는 맞아준 첫 번째는 차밭이었다. 한국의 보성 녹차밭 처럼 정연한 아름다움은 없었지만 정돈되지 않은 거친 아름다움이 있었다.


자 숲속으로


설명해주는 안내원

 

차밭을 지나서 우리는 드디어 숲의 입구에 도착했다. 한 명이 지나가면 꼭 알맞을 길을 따라가면서, 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훼손되지 않아 조금은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길이 미끄러웠기에 모두 조심조심 내려갔다. 하지만 용호의 엉덩이는 대지와 격하게 키스하기도 했다. 안쓰러움이 밀려왔지만 숲에 정령이 있다면 신고는 확실히 한 셈이니 나쁘진 않네라고 생각했다.

 다듬어 지지 않은 길은 사실 약간의 위험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열대 자연의 본연을 느낀다는 생각에 나는 약간 흥분했다. 약간의 안개 덕분에 누군가가 말한 은밀하면서도 신비한 느낌이 더했다. 공룡이 나왔다면 구라겠지만 분위기상 나올 수는 있겠다 싶었다.ㅋㅋ


원숭이


 

갑자기 가이드가 조용히 하라고 했다. 뭔가 나무에서 출렁출렁 움직이기 시작했다! 흰꼬리를 가진 원숭이가 있었다. 찬찬히 보니 그 수가 꽤나 많다. 가족인가 보다. ‘오오 신기햇!’ 이런 눈빛을 열심히 쏘았더니 원숭이의 눈이 뭥미이러는 거 같아서 금세 관심이 사그라져 버렸지만 자연산 원숭이는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귀여운 아기


창구구 시내



수도원~

 본부로 돌아와 차를 타고 떠날 준비를 했다. 역시나 차는 따로 없다. 이번에는 운좋게도 바로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서 비집고 탔으니 행운이었다. 한 시간 좀 넘게 차를 타고 가니 드디어 르완다와 콩고의 국경이 인접해 있는 창구구에 도착했다. 우리는 창구구도심에서 국경쪽으로 나가기 위해서 버스를 알아보다가 갑자기 큰비를 만났다. 근처에 있는 주유소로 뛰어 들어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는 그곳에서 우리는 오오 신기햇!’ 라는 현지인들의 눈빛을 뭥미라는 눈빛으로 쿨하게 받아쳐주었다. ㅋㅋㅋ (미안 우리도 많이 피곤했거든) 30분 정도 물총으로 쏘는 것 같던 비가 약해지기 시작했다.(우기는 늘 이런 날씨다) 버스를 타고 국경마을로 이동한 우리는 한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는 수도원이 여행객을 위해서 싼값에 방을 임대해 준다고 한다. 가격은 단돈 5천원! 우와 정말 싸다. 그래서 방은 기대도 안 했는데 생각보다 정말 쓸만한 방으로 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우리가 머물렀던 방

 모두들 하루종일 걷고, 차타고 ,이동하느라 기진맥진했다. 나도 힘들어서 길바닥에 붙은 껌딱지 마냥 침대에 찰싹 붙어버렸다. 하지만 내가 샤워할 차례가 되어서 일어나야만 했다. 찬물샤워는 정신번쩍,피곤말끔 을 나에게 선사해주었다.




저녁식사


 저녁을 먹으러 수도원에 있는 식당을 찾았다. 스프와 밥, 고기 1인당 2조각, , 감자가 나왔다. 1인당 3천원. 가격도 맛도 그닥 나쁘지 않았다. 다 먹고 갑자기 여기도 맥주를 팔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도 자못 궁금해 했다. 물어보니 판덴다!! ㅋㅋㅋ 그래서 우리는 각자 원하는 대로 차, 콜라, 맥주를 시켜서 먹고 내일을 위해서 올라가서 일찍 잤다.

 

 아침이 되었지만 역시나 잠은 해가 중천에 걸려야 제 맛이 나는 것 같다. 이곳은 보통 5시반이면 해가 뜨고 사람들도 대부분 그때부터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루가 빨리 시작되는 셈이다. 7시에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서 식당으로 내려갔다. ,커피,계란프라이로 아침을 먹고, 8시반까지 수다 떨며 놀다가 콩고국경을 보기 위해서 출발했다.

 막 출발했을 때, 숙소 앞에서 어떤 사람이 익스체인지?’ 이러면서 콩고돈을 보여주었다. 오오 신기했다. 나는 돈의 디자인에는 그 나라의 대표 상징물과, 그 나라의 가치관이 들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돈을 좋아한다. 그래서 당장 낭가헤?(얼마야?)’라고 물었다. 10콩고프랑에 100르완다프랑(200)을 달라고 했다. 돈이 깨끗하고 200원은 큰돈이 아니기에 얼른 구입했다. 근데 아불싸 근처 환전소에 가니 10콩고프랑은 약7르완다프랑(14)이란다. 허헐;;; 완전 바가지 썼다. 하지만 더 이상 속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다른 콩고 돈들을 환전할 수 있었다.


국경과 파키스탄 평화유지군

다리 건너편은 콩고




 국경은 으레 삼엄할 줄 알았으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차 한대가 지나갈 작은 다리를 사이에 두고 르완다와 콩고의 검문소가 양쪽에 있었다. 현지인들은 보통 자유롭게 다리를 오가고 있었고 일부는 검문소?에서 비자 같은 것을 발급받기도 했다. 우리는 콩고쪽으로 넘어가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koica단원 규정상 그럴 수 없었기에 그냥 다리에 올라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국경엔 신기한 사람들도 있었다. 다름아닌 UN평화유지군 이었다. 콩고는 내전으로 인해서 내정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유엔의 도움을 받는구나 싶었다. 근데 UN군을 잘 보니 파키스탄군이었다. 나는 파키스탄이 인도와의 국경 분쟁이 있다는 사실, 최근에 큰 테러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이곳에 파키스탄군이 파견되었다는 사실이 조금 의아스러웠지만 분명 파키스탄군이었다. 참 신기했다. 국내정세와 국제정세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느낌을 받았다.


키부 호수 건너편 콩고~


stop


호수에 있는 배에 올라서 ㅋ

수산 장마당

 국경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우리는 다시 창구구 타운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가면서 바다 같은 키부 호수를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키부 호수는 르완다 서쪽을 모두 감싸고 있는데, 남북으로 길이가 약 100km나 된다. 이 호수의 뱃길을 통해서 북쪽의 코카콜라 공장에서 이곳 남쪽 끝까지 음료가 배달된다고 한다. 천천히 걸어 올라 가면서 코카콜라 창고도 보고, 수산시장(그냥 장마당이다)도 보고 옛 총리의 저댁이었다던 폐가도 보다가 힘들어서 우리는 그냥 버스를 잡아타고 타운으로 갔다.


창구구 시내


시장에서 만난 아이들~


값비싼 생선요리

 타운에서 시장을 구경했으나 다른 도시들과 크게 다를것도 없고 해서 우리는 얼른 나와서 점심을 먹었다. 르완다에는 해산물을 먹기 힘들지만(내륙국가다) 이곳을 그래도 큰 호수를 끼고 있는 도시니 만큼 생선요리가 쌀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그래도 영문이가 생선을 주문한 덕에 우리는 생선맛을 잠시 볼 수 있었다. 맛은…..생선맛이었다. (아 조기가 먹고 싶구나ㅠ)

 수도까지 가는 표를 끊으니 드디어 여행이 끝났구나 생각되었다. 근데 수도까지 6시간이 걸린단다 ㅠㅠㅠㅠㅠ 가는 동안에 우리는 화창했다가 구름이 꼈다가, 폭우가 내렸다가 다시 맑아지는 요란한 우기의 르완다를 만끽할 수 있었다.


 도움이 되셨나요?^^

르완다에는 크게 세 곳의 국립공원이 있다.

 

북쪽의 비룽가 화산공원서쪽의 ----공원그리고 남쪽의 니웅웨 국립공원이다이번에 내가 여행한 곳은 남쪽의 니웅웨 국립공원이다다녀온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쥬라기공원에 나온듯한 천연의 자연의 느낌을 만끽할 수 있다고 하니 기대가 되었다.



 월요일부터 여행을 하기로 했지만 나는 월요일에 학교에서 회의가 있어서 늦게 합류하기로 했다. 르완다어로 해서 알아들을 수도 없는 지루한 4시간의 회의가 끝나고 드디어 나는 일행과 합류하기 위해서 미리 챙겨둔 짐과 함께 길을 나섰다. 니웅웨로 가기 위해서는 남쪽의 중심도시이자 옛수도인 부타레를 지나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부타레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부타레까지

예상소요시간은 대략 5시간. 나는 북쪽의 중심도시 무산제(루헹게리)에 있어서 중간에 수도에서 버스를 한번 갈아타야만 했다. 너무 늦게 도착하지 않기 위해서 식사를 못했더니 배가 고팠다. 다행이 중간중간에 사람들이 타고 내리곤 하는 지점이 있다. 이곳에서는 계란이나 땅콩을 창 밖에서 안으로 열심히 팔기 때문에 나는 삶은 달걀, 작은 사과, 땅콩을 사서 허기의 폭동을 겨우 다독여 부타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부타레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8. 시내에서 오토바이택시를 타고 부타레대학교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용주형님댁에 도착했다. 다행이 모두 식사중이어서 나는 얼른 자리를 비집고 밥과 미역국을 김치와 함께 게눈감추듯 먹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발명품 커피믹스를 한잔하니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이번 여행의 멤버는 큰형님 용주형, 작은형님 일원이형, 붕고 용호, 영구루베 영문이 그리고 나 이렇게 5명이었다.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여자는 없.. 이곳 르완다 koica는 어찌된 영문인지 여자단원이 무지 적다.

 저녁을 먹고 우리는 다음날 먹을 샌드위치를 만들기 위해서 준비에 들어갔다. 먼저 얇게 썰어온 햄을 팬에 굽고, 치즈킬러 영문이는 치즈를 알맞게 썰고, 나는 양배추를 채썰었다. 이렇게 준비된 재료를 각자 기호에 맞게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2개씩 만들었는데 난 하나는 햄을 두 개 넣고 다른 하나에는 햄을 한 개 넣었다. (다음날 한 개 넣은걸 무지하게 후회했다.) ,마요네즈,,치즈양배추를 넣어 만든 샌드위치는 그럴듯했다. 이렇게 음식을 직접 준비하니 소풍 가는 기분을 한껏 만끽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니웅웨로 떠나기 위해서 정류장으로 나갔다. 10시 차를 타려 했으나 가격을 깎기 위해서 우리가 실랑이 하던 와중에 10시차가 떠나버리는 바람에 우리는 11시차를 타야만 했다. 그래도 6천원이었던 가격을 1천원 깎았으니 뭐 그닥 나쁘진 않다. 1시간 남은 시간에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우리는 근처에 있는 국립 박물관에 다녀오기로 했다. 걸어서 10분 거리였던 박물관은 아담한 크기였고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 결국 들어가보는 건 포기하고 사진을 찍으며 놀다가 11시에 맞춰서 정류장으로 돌아왔다. 10,,20,,30,, 용주형님이 항의했다.(항의가 별 효과가 없으리라는 건 우리 모두 알지만) 결국 1시간이 지나서야 우리는 버스를 탈수 있었다.

 니웅웨 까지는 차로 2시간 거리. 나는 불편한 자리에 앉아서 잠을 자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방 잤다.ㅋㅋ 나는 자느라 몰랐지만 앞 좌석에 앉았던 용주형님의 말에 따르면 운전사녀석이 한 손으로 mp3를 조작하며 운전을 하는 바람에 가는 동안 아찔한 순간이 몇 번 있었다 한다. 덕분에 잠도 못 자고 바짝 긴장했다고 하니 참 웃겼다.



 니웅웨에 도착했다는 말에 잠에서 깨어 차에서 내리자 피부에 와 닿는 안개를 느낄 수 있었다. 축축하고 습한 공기는 뭔가 생소한 느낌을 주었다. 용호가 GPS로 높이를 확인해보니 무려 2400m나 된다고 알려주었다. 갑자기 산소가 부족해 호흡이 가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형님들을 따라 사무소 쪽으로 들어갔다. 새로운 숙박시설과 업무를 위한 공간을 짓느라 공사가 한창이었다. 안내를 따라 들어간 곳은 작은 텐트로 만들어진 임시사무소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공원 입장료 20,하룻밤 텐트 숙박료10, 그리고 내일 있을 트레킹15불 개인당 45불을 지불하고 영수증을 받았다.


 안내원을 따라서 조금 산 아래로 내려가니 조그마한 정자가 하나 있고 그 옆에 텐트를 3-4개 정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우리는 일단 텐트를 쳤다. 땅이 말랑말랑해서 금세 칠 수 있었다. 텐트를 치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추위가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얇은 운동바지와 반팔을 껴입었다. 하지만 용주형님은 니웅웨 숲이라 그래서 이렇게 추운지 몰랐지!’ 라고 하시며 반바지에 반팔,긴팔 하나씩을 입은 것이 전부였으니 오죽 추었을까 싶다. 관리직원이 모닥불을 피울 준비를 하는 동안 우리는 어제 각자 만든 샌드위치를 먹었다. 이때가 이미 3시쯤 이었으니 다들 배고파서 말도 없이 열심히 먹었다.




그사이에 만들어진 모닥불로 몸을 녹이면서 우리는 불장난을 시작했다. 40대이신 용주형님의 놀라운 불지피는 노하우를 전수받으면서 우리는 각자의 카메라로 열심히 불꽃도 찍고 이야기도 하며 놀았다. 그러다 보니 커피한잔이 다들 절실해졌다. 사무소에서 냄비를 하나 빌려서 장작불 위에 올려놓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컵이 없었다. 고민하다가 우리는 샌드위치를 싸온 호일을 컵으로 만들어 먹기로 했다. 호일에 커피믹스를 타서 커피를 만들어 먹으려는데, 호일컵에서 커피가 셌다. 아까운 커피! 라는 생각에 뜨겁지만 후루룩 다 마셔버렸다.ㅋㅋ 돌아가면서 이렇게 달짝지근한 커피맛을 즐긴 후, 또 재미있는게 없을까 하다가 우리는 감자를 판다는 이야기를 듣고 생감자 1kg을 주문했다. 그리고는 호일로 싸서 모닥불에 던져 놓고, 준비해온 봉지라면을 먹기 위해서 다시 물을 끓였다. 냄비에 재나 벌레가 들어가기도 했지만 잘 건져내고 우리는 라면을 맛있게 먹고 프리무스도 한 병씩 먹으며 다시 수다를 떨었다. 그런데 아차차 감자를 잊어먹고 있었다. 감자를 꺼내보니 어떤 건 완전히 다 타버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먹을 만한걸 골라서 각자 조심스럽게 맛을 봤다. 역시 고산지대라 그런지 르완다 감자는 찰지고 담백한 맛이 입안에서 쪼쪼댄스를 추는 것 같았다.

 

즐거운 캠프 퐈이아시간이 끝나고 우리는 두개의 텐트로 나뉘어 들어갔다. 산중의 밤은 쌀쌀했지만 나는 많이 껴입고 침낭도 두둑했던 덕분에 따듯하게 잠을 이룰 수 있었다.


 도움이 되셨나요?^^




어른들은 흔히 집만큼 편한곳이 없다고 한다. 여기서 살집을 구해서 혼자 살아보니 어렸을땐 잘 몰랐는데(부모님집이니까) 정말 집이 최고다. 집안의 모든 것이 라는 개인의 기호에 잘 들어맞게 내가 배치하고 구성했기 때문이리라.

 

집을 구하며 한 고생

 

여기 르완다에서 집을 구하면서 정말 개고생을 했다. 한국이라면 부동산에 가서 집을 알아보면 간단하지만 여기는 수도에서 조차 부동산은커녕 복덕방도 거의 없다시피한다.(어딘가 있긴 하단다) 하물며 내가 있는 지방에서야 오죽하랴. 그래서 나는 동료 현지교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같은 도시에 배정받은 영문이와 같이 온 도시를 헤집고 다녔다. 마음에 들면 막 들어가서 집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곤했다. 거의 2주동안 헤집고 다닌결과 나는 아주 좋은 위치에 있는 지금 내가 사는 집을 발견하게 되었다. 학교(5분거리)랑 타운(7분거리)사이에 적당한 거리에 있는 집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금방 계약 했냐고? 그건 아니다. 사실 이 집이 영문이에게 우선권이 있어서 나는 포기하려 했으나 영문이가 더 좋은 집을 찾아 들어가서 드디어 나에게 기회가 왔다! 너무 기뻐서 얼른 계약 하려했다. 그런데 그 집에 누가 벌써 입주를 해 버린 것이다. ㅠ 너무나도 실망했지만 나는 집을 포기 할 수 없었다. 백방으로 알아본 결과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집값(30만원)을 부담스러워하고 한 달만 계약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나는 한 달동안 영문이네 집에 머물면서 기회를 노렸고 결국 그들보다 조금 높은 가격을 주고 집을 얻을수 있었다.

 

 


집에 들어가며

 

집의 위치나 구조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지만 아쉽게도 집 밖

에는 담이 없고 안에는 아무런 가구가 없었다. 그리고 집에는 자잘한 고장이 참 많았다. 안방에 전등이 하나 고장이 났었고, 형광등이 깜빡거렸다. 화장실에는 변기커버가 없고, 샤워기 물은 세고, 싱크대 수도꼭지는 문제가 있었다. 방문이 잠기지 않는 방들이 있고 집 뒷문은 땅에 끌려서 여닫기가 쉽지 않았다. 집에 담이 없는데 커튼은 3개뿐이었다. 밖에서 누가 들여다 볼 까봐 신경이 쓰였다.(현지인들이 외국인에 대한해 갖는 관심은 지대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집에 들어가기 전에 집주인이 벽면에 페인트칠을 새로해주고 수도를 새로 고치려고 노력하였다는 점이다. 우여곡절 끝에 집에 들어가니 당장 이 한 몸 누울 곳이 없었다. 그래서 침대매트를 하나 사서 작은 방에 놓았다. 3000원짜리 작은 책상을 사서 임시방편으로 일을 보았다. 조금 불편했지만 그래도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 있었다.

 



 나는 위의 이런 자잘한 고장들을 집주인에게 말했고, 알아서 잘 처리해줄것이라 생각했으나 큰 오산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아쉽게도 약속을 그리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몸서리치게 깨달았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슬슬 화가나던 중에 어느날 비바람이 크게 왔다
. 근데 갑자기 창문틈으로 빗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다!!! 순간나는 화가 폭발했다. 하지만 화낼 대상은 옆에 없었고, 전화로 말하기에는 내 영어도 짧고, 집주인의 영어는 더 짧았다. 집 계약을 취소할까도 고민했지만 다른 방안이 없으므로 일단 참기로 했다. 그날밤 얼마나 화나나고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잠이 오질 않았었다. 결국 위의 자잘하고 다양한 문제들은 내가 직접 거의 모든 것을 처리했다. 수도며 전기 공구들과 부품들을 사와서 내가 직접 갈고 고치고 연결을 했다. 그래서 지금은 조금 불편함이 있지만 참을만하다.

 

집에 들어가고 가구가 들어오기까지 근 한달동안 바닥에 매트하나 깔고 살았다. 그래도 집을 일일히 손보느라 시간가는줄 몰랐다. 쇼파와 침대가 들어오는 날 집은 드디어 제법모양을 갖추게 되었고 지금은 이곳 삶에 만족하며 편안한 집에 잘 적응하고 있다.

 

 도움이 되셨나요?^^


온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었다.  인터넷으로 자주 소식을 전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해 아쉬웠다.

일단 인터넷을 접속하려면 시내에 나가야 해서 접근이 쉽지 않고,또 공부하거나 혹은 밥을 준비하느라 바쁘기 때문이기도 하다. 변명은 여기까지 하고 그동안 있었던 몇가지 일을 이야기 하고 싶다.

 

먼저 르완다에 고아들을 위한 자선 축구시합이 있었다. 드록바, 에투, , 등 유명한 아프리카 축구선수들을 모두 한번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우리는 키냐르완다어 수업을 보충하기로 하고 르완다어 선생님과 같이 경기를 관람하러갔다. 경기장 문이 3시부터 열린다기에 그때 시작하는 줄 알았던 내가 어리석었다. 일단 우리는 좌석번호가 따로 없는 좌석들 중에서 비교적 제일 앞에 앉기위해서 일찍 갔던 것이다. 경기의 거의 7시반이 넘어서 시작했는데, 그럼 4시간 반을 뭐했을까? 처음 한시간은 그냥 현지 사람들과 이야기 하고 한국돈도 보여주면서 소개해 주기도 하며 대략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주니어팀들이 시합을 시작해서 그것도 재미있게 45분씩 전후반을 모두 보아도 겨우 6시 정도 였다. 그때부터 지루하게 앉아 있었다. 이럴줄 알았다면 책이라책 가져올걸..하고 후회했다. 7시쯤되니까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길래 보니 대통령이 왔다. (이나라 대통령은 인기가 상당히 좋다. 지지도가 90%가 넘는단다.) 그리고 7시반쯤되서 드디어! 축구선수들이입장했다. 당연히 우리 대통령님께서 내려가서 일일히 인사하고, 시축하고, 하니 한 8시 정도되었다. 정작 진짜 축구경기는 전후반 35분씩 짧게 했다. THIS IS AFRICA~!~!~!

 그래도 경기는 상당히 볼만했고 수준이 높았던 것 같다. 디디에 드록바를 직접보니 무슨 황소를 보는 것 같았다. 덩치가 정말 엄청난데도, 정말 빨랐다. 드록바가 공을 잡으면 공도 무슨 탁구공마냥 작고 가벼워 보였다. 대단했다.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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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주일 뒤에는 농업 박람회를 다녀왔다. 박람회라 그래서 코엑스 같은거 생각하면 안된다. 그냥 허허벌판에 부스좀 설치해 놓고 나름의 음식,농업기술들을 보여주는 자리였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이쁜 누나?들이 안내를 하고 있었고, 먹을것도 많았다. 나는 바나나 와인을 하나 사고, 커피도 한잔 얻어 먹고, 차도 받았다. 커피는 생각보다 진하고 맛있었다.^^ 와인은 집에 와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는데 우리나라 막거리와 비슷했다! 다만 바나나 향이좀 강하게 나는것이 좋았다. (tea)를 만드는 기계들을 보았는데 좀 엉성했지만 바로바로 포장되서 나오는 것을 보니 신기하기도 했다. 또 가장 입을 즐겁게 하는 것을 하나 만났는데, 그것을 바로 요거트였다. 어릴적 먹던 슈퍼100이랑 맛이 똑같은데 값은 싸서 너무 좋았다.(250ml 500원 정도)

 

여기는 루헹게리입니다. 여기에 '고릴라 볼케이노 호텔'이라는 생각보다 좋은 곳을 찾아서 앞으로는 인터넷을 비교적자주할 수 있을 것네요ㅋㅋ


 도움이 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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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를까?

빈곤? 기아? 가뭄?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나는 건강히 지내고 있다.

비록 약간의 단전과 단수, 그리고 약간의 모기가 괴롭히고 있지만 말이다.

 

나의 하루

나의 하루는 정말 단순하다. 7시쯤 일어나 7시반쯤에 모두 모여 같이 빵에 잼과 햄을 넣고, 우유냐 주스를 먹는다.

유통기한이 짧은 우유가 우유맛이 한국맛이 비슷해 인기였지만 유통기한이 때로는 이틀이 안된다는 것을 몸소경험한 후로는  다들 꺼려한다. 오전엔 불어 3시간을 한다. 현지 선생님인데 키가 크고 말이 없지만 수업방법이 공격적이라 다들 별로 좋아한다.  예를 들자면 얼굴에 대고 발음을 계속 교정해 주는 식이다. 민망하다.  점심은 우리 요리담당 현지인이 도와준다. 밥을 우리가 하고 반찬을 해준다. 반찬은 아주 맛있다. 고기국에 감자튀김, 샐러드를 해준다.  메뉴는 매일 똑같다. 나는 올드보이 최민식 되었다. 오후에는 르완다어 3시간 한다. 선생님은 앞니가 하나 완전히 없지만 착해서 좋다. 설명도 잘해준다. 영어 알아듣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말도 잘한다. 그러고 집에 돌아와  1시간 후면 어둑어둑해져서 하루가 금방 가버린다. 유숙소의 방안에 불빛이 어둡다. 책을 읽기 힘들정도로. 그래서 초반엔 일찍 잤는데 요즘엔 전등도 조금 밝은 것으로 바꾸고 두가지 언어를 공부하느라 좀더 늦게 자지만 그래도 11시에서 12시엔 잔다. 그리고 아침이 반복한다.

 

이곳의

 이곳 사람들은 외국인을 굉장히 신기해하고 반갑게 맞아준다. 지나가면 사람들이 인사를 많이 해줘서 인사말은 금새 배웠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친절하고 적극적이여서 좋다.^^

 

문화

도로와 거리는 생각보다 정비되어있다. 거리도 굉장히 깨끗한 편이고, 거리에 차들도 적어 막히는 구간이 적다. 도시(75만인구) 30분이내에 주파할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여기의 이동수단은 오토바이다. 오토바이가 택시의 역할을 하는데 꽤나 편리하고 빠르다.

() 좋다. 요즘 내가 수업 끝나고 종종 가는 작은 찻집이 있는데 공간은 남짓이고 테이블은 하나지만, 맛이 좋다. 차는 한국에서 밀크티 맛이랑 비슷한데 우유는 없다. 머그컵 한잔에 100프랑(220)정도 한다. 며칠 만에 아주머니랑 친해져서 vip 되었다.

 

경험

여기도 마트가 있다. 두개정도 있는데 개는 우리나라의 마트같이 크다. 24시간이고 물건이 다양하다. 다만 한국에서랑 가격이 비슷하거나 비싼 것이 흠이긴 하다.

 

 

인터넷

스타벅스 같은 카페에 와야만 인터넷을 있을 정도로 인터넷 환경이 열악하다. 그래서 마음을 접고 살고 있다. 그래도 앞으로 한두달 간은 매주 일요일에 이렇게 글을 올릴 계획이다. 시차는 한국시간에서 7시간을 빼면 된다.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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